미국에서 급성장하는 도박 산업, 뉴욕 한복판에도 카지노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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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복판에 ‘잭팟’ 터질까
미국 내 도박 산업 붐은 미국 경제·문화의 중심지라고 일컫는 뉴욕에서부터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뉴욕은 1821년 미국에서 최초로 도박을 금지한 보수적인 주였다. 도박 산업은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마피아가 운영하는 지하 시설에서 불법적으로 운영되곤 했다. 뉴욕과 인접한 뉴저지주에서 도박을 합법화하며 슬럼가였던 ‘애틀랜틱 시티’에 1978년 카지노를 세우고 활기찬 관광 도시로 탈바꿈할 때에도 법으로 도박이 금지된 뉴욕에선 부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루이지애나, 일리노이를 거쳐 ‘모터 시티(자동차 도시)’라는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간까지 도박 산업에 문을 열어주면서 도시 성장에 기름을 붓자, 뉴욕도 마침내 2016년 상업용 카지노를 열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뉴욕주 내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뉴욕시엔 여전히 카지노가 없었는데, 조만간 뉴욕 도심에서도 ‘잭팟’이 터질 전망이다. 뉴욕시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도시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자 죽어가는 경기(景氣)를 되살릴 방안으로 상업용 카지노 건설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주정부는 최다 세 곳을 선정해 카지노 사업권을 내주겠다고 밝혔고, 뉴욕시를 기반으로 한 여러 사업자가 여기에 뛰어들어 조만간 카지노가 생긴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주정부에 신규 카지노 사업 제안서를 제출한 사업자는 총 11곳이다. 이 중엔 한 해 6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맨해튼의 중심가 타임스스퀘어 인근에 카지노를 설립하겠다고 선언한 유명인도 포함된다. 미국 힙합계의 거물 제이지(Jay-Z)가 참여한 컨소시엄은 4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투입해 대중문화와 오락을 겸비한 세계 최고 카지노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공중 공원으로 유명한 ‘하이 라인’ 인근의 허드슨 야드, 브루클린의 유원지 코니아일랜드 등도 유력 후보지로 꼽힌다. 매년 북미 지역 최대 콘텐츠 박람회 ‘뉴욕 코믹콘’이 열리는 재비츠 컨벤션센터 인근, 성 패트릭 성당 옆에 세운 고급 백화점 색스 피프스 건물, 뉴욕의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뉴욕 메츠의 경기장 시티필드 인근 녹지 공간, 한때 트럼프 그룹이 소유한 골프장에서 현재는 카지노 운영 업체 밸리(Bally)가 인수한 페리 포인트 등도 거액 투입을 약속하며 카지노 유치권을 따내려 하고 있다. 뉴욕주 게임 위원회 전무 로버트 윌리엄스는 뉴욕주의 카지노 프로젝트 규모에 대해 “숨이 막힐 정도”라고 했다. 일단 뉴욕 도심 지역에 카지노가 들어서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며 해마다 수익을 수조원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 도심 카지노가 미국 전역의 도박·관광·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스포츠 베팅과 온라인 카지노까지
지금껏 미국의 도박 산업은 네바다와 뉴저지를 중심으로 한 카지노가 이끌었다. 미 전역엔 지난해 1월 기준 46주에서 카지노 10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엔 스포츠 베팅과 온라인 도박(iGaming)까지 성행하며 도박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미국 도박 산업의 판도가 바뀐 것은 2018년 나온 판결 때문이기도 하다. 1992년 미 의회는 스포츠 베팅을 금지하는 법(PASPA)을 제정해 네바다주 등 네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금지했다. 그러자 네바다와 함께 미국 도박 산업을 이끄는 뉴저지는 이 법이 주정부의 자치권을 보호하는 연방 헌법의 10차 수정 조항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냈고, 연방 대법원은 2018년 5월 14일 “각 주가 자율적으로 스포츠 베팅 관련 규제를 정할 권리를 보장한다”며 법을 폐기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미국의 스포츠 베팅 시장이 급성장했다는 해석이다. 이후 6년 동안 38주와 컬럼비아 특별구가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하자 미 전역으로 스포츠 베팅이 빠르게 확산해 현재 미국인의 40% 정도가 스포츠 베팅을 하고 있다.
기술 발전도 도박 산업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손쉽게 베팅의 유혹에 빠지도록 했다는 뜻이다. 예전엔 카지노 업장에 가서 슬롯머신이나 테이블 게임을 하고, 경마장 등에서 경기 직전 돈을 걸 선수들을 고르는 방식으로 베팅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포츠 바나 집,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언제든지 휴대전화 앱으로 스포츠 베팅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인 스포츠 베팅 앱 ‘팬듀얼(FanDual)’을 써보니 얼마나 간편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앱 설치는 다른 일반 앱과 방식이 같고, 자신의 계정도 이름과 주소 등을 넣으면 만들어졌다. 프로 스포츠뿐 아니라 대학 스포츠 경기에도 베팅이 가능했고, 경기 결과뿐 아니라 ‘이 경기에서 첫 골을 넣을 선수’ ‘게임 첫 1분 동안 양 팀이 몇 점을 넣을지 예측’ 등 다양한 종류의 베팅을 앱 설치 후 바로 할 수 있었다.
◇주정부 세수는 늘겠지만
도박 산업의 확산은 주정부엔 새로운 세수(稅收) 창출이란 이점도 있다. 미국게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미국 상업용 게임 수익은 역대 3분기 기록 중 가장 많은 177억1100만달러(약 26조원)를 기록했다. 15분기 연속 매출 성장을 통해 나온 기록이다. 지난해 1~9월 전국 상업용 게임 매출은 532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0% 올랐기 때문에 4분기 매출까지 확정돼 더할 경우 역대 최고 연간 매출액을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도박을 허용하는 주정부는 지방세 등으로 수십억 달러의 이득을 얻었다”고 했다.
돈이 되다 보니 스포츠 베팅 업계도 과감한 마케팅에 나서는 양상이다. 지난해 1월 캐나다 국영방송(CBC)과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이 TV로 생중계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5경기와 NBA 2경기를 분석한 결과 화면에 노출되는 스포츠 베팅 회사 로고와 광고 등 도박과 관련된 메시지가 전체 방송에서 3537개에 달했다.
하지만 도박 산업의 확산이 좋은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저축 대신 베팅에 달려드는 사람이 그만큼 늘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브리검영대 제이슨 코터 교수는 WTTW방송에서 “가계에서 스포츠 베팅을 시작하면 주식 투자를 중단하고 장기 저축의 일부를 베팅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특히 재정이 매우 빠듯한 가구가 저축을 가장 많이 줄이고 베팅을 위해 부채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